당신에게 없는 우리의 미래가
임현 실종아동보호법이 제정된 2005년 당시 희영이의 나이는 이미 스물한 살이었고, 그런 탓에 법률적으로 보자면 성인 가출인으로 분류되어 관리되고 있었다. 법률안에 적힌 단어가 ‘실종 당시’가 아니라, “실종 신고 당시”였기 때문에 벌어진 일이었다. 그럼에도 여전히 이해되지 않는 점은 남아 있었다. 신고를 하지 않았다는 것은 또 무슨 말인가? 법적으로는 그렇다고 했다. 당시 공공 문서에 대한 의무 보관기관은 5년이었고, 1997년에 접수한 서류를 2005년에 관리하지 않는 것은 전혀 문제가 되지 않았다. 아이는 분명 실종되었으나, 아이의 실종을 증명할 서류는 어디에도 없었다. 서기원은 이제껏 단순히 법이 없어서 생기는 문제라고만 생각했었다. 그러나 법보다는 의지가 없다는 게 더 큰 문제였다. 여전히 가족 외에는 누구도 아이를 찾으려고 하지 않았다. 애당초 찾으려는 생각도 없고 노력도 전혀 하지 않는다고, 아무도 자신을 배려하지 않는다며 그는 또 한번 낙담할 수밖에 없었다. 무엇보다 희영이를 찾아보겠다고 매달렸던 일이 합법적으로 아이에 대한 수사를 종료시켜버린 셈이었다. 장기 실종 가족들의 기사나 인터뷰에서 자주 보게 되는 표현 중에 하나는 당시에는 CCTV가 지금처럼 많지 않았다는 것이었다. 그때 그것만 있었더라도 허무하게 아이를 잃어버리지는 않았을 거라는 아쉬움 때문이었다. 1
미래에 대해 나는 자주 생각하는 편인데, 구체적인 내용이나 분야가 그때그때 달라지기는 했으나 결국에는 머지않아 도래할 나의 장래와 관련된 문제들이었다. 그게 주식이나 부동산 같은 재테크 문제일 때도 있었고, 내년에 있을 대선 결과에 대한 예상일 때도 있었으며, 당장 마감을 해야 할 원고에 관한 걱정이거나 팬데믹 상황이 종료 뒤에야 할 수 있을 만한 구체적인 여행 계획일 때도 있었다. 집에서 가까운 공원을 산책하는 동안 아내와 나는 이런 이야기들을 거의 매일 나누면서 공동의 미래를 구상하기를 좋아했다. 지금은 아니지만 나중에 우리가 무언가를 키운다면 고양이보다는 개가 되지 않을까 추측하거나, 하고 있는 일들을 당장 정리했을 때 앞으로 무얼 부담하고 무얼 더 절약해야 하는지 등을 따져보기도 했다.
아내는 몇 달 전 디스크 진단을 받은 뒤로 요추에 좋은 기능성 제품들에 관심을 보이기 시작했다. 어떻게 누워도 통증이 줄어들지 않는다고 했는데 전문가들의 조언대로 평소 바른 자세로 앉고 되도록 많이 걸으려고 노력했다. 그런 까닭에 주로 식후나 밤늦은 시간을 이용해서 산책을 하거나 주말이나 공휴일에는 이른 아침부터 천변을 따라 멀리까지 다녀오는 일이 많았다. 아내의 미래 중 많은 부분은 건강과 관련되어 있었다. 무얼 먹고 무얼 먹지 말아야 할지에 대해 민감하게 살피는 편이었는데, 그러나 내 경우엔 너무 많이 먹는 것이 더 문제라고 지적하기도 했다. 몸에 나쁜 음식을 지나치게 많이 섭취했을 때 생길 수 있는 질병들을 검색하고, 메시지로 보내주기도 했었다.
그보다 더 몇 달 전에는 토요일 이른 아침부터 아내가 부산하게 외출을 준비한 적이 있었다. 산책을 하기에 적합한 간소한 복장이었으나 자동차 키를 챙겼고, 미리 예약을 해둔 것도 아니면서 병원을 좀 다녀와야겠다고 말했다. 나는 그 순간을 다시 떠올릴 때마다 아내에게 몹시 미안한 마음이 들었다. 평소의 아내라면 주말을 이용해 모자란 잠을 더 보충하려 하거나, 보이차를 끓여 마시거나, 안방 문을 닫아놓은 채 거실에서 혼자 좋아하는 음악을 틀어놓고 책을 읽거나 화분에 물을 주거나 그것도 아니면 함께 영화 소개 프로그램을 시청하면서 점심 메뉴를 고민했을 텐데, 그날은 그러지 않았다. 그런데도 나는 평소와 다른 아내를 서둘러 따라나서지 않았다. 괜찮다는 말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였고, 금방 다녀오겠다는 근거 없는 말에도 전혀 의심을 품지 않았던 것이다.
그날 오후가 되도록 아내는 돌아오지 않았다. 여러 번 통화를 시도했으나 받지 않았는데, 겨우 연결이 되었을 때에도 아내 쪽에서 먼저 다시 전화를 걸겠다는 말만 남기고 끊어버렸다. 그러고도 한동안 아무런 연락이 없다가 다시 통화가 되었을 때, 아내의 목소리는 좋지 않았다. 모양이 나쁘다고 했다. 검사 결과가 나와봐야 정확하게 알 수 있을 거라고 했으나, 아무래도 수술이 필요할 것 같다고도 했다.
병원까지는 차로 30분가량 걸릴 만한 거리였으나 전화를 끊고도 한두 시간은 더 지난 뒤에야 아내는 집에 도착했다. 나중에 그렇게 늦은 이유에 대해 들으면서 나는 도로 중간에 정차한 채 서럽게 울었을 아내를 상상했다. 암담하고 불안한 채 홀로 운전석에 앉은 아내가 무척 외로웠을 거라고도 생각했다. 내 앞에서도 아내는 좀처럼 울음을 그치지 못했다. 그렇게 우는 것이 호르몬이나 스트레스에 어떤 영향을 미칠지 걱정하면서도 나도 함께 울 수밖에 없었다. 그러고는 무슨 이유에서 그랬는지 나는 함께 살면서 그동안 내가 잘못했던 것, 평소라면 쉽게 인정하지 않을 만한 일들을 먼저 늘어놓으며, 무언가를 다짐하기 시작했다. 무엇보다 이전에 내가 그렇게 하지 않았기 때문에 지금의 아내가 아픈 거라고, 그래서 미안하다고, 그것 모두 직접적인 질병의 원인이 되었을 것만 같았다.
그러면서도 한편으로는 불안해하는 아내를 달래야 했다. 그때 도움이 될 만한 것들이란 구체적이고 객관적이면서 누구나 신뢰할 만한 근거들이어야만 했다. 괜찮다, 별것 아니다, 어딘가 분명 착오가 있었을 것이다, 같은 무책임한 말들이 전혀 아니었다. 혹시라도 진짜 나쁜 결과를 마주하게 된다면 그때 가서는 또 어떤 다정한 말로 아내를 안심시킬 수 있을지 확신할 수 없었기 때문이었다. 대신 그보다는 의료보장 제도와 현대의 과학기술들, 초기 발견 시 완치될 수 있는 객관적이고 수치화된 확률이 더 도움이 되었다. 나쁠 수도 있지만 가장 최악은 아닐 가능성들, 전문적인 관련 의학 기사들을 검색하고 신빙성 있는 자료들과 사례들, 치료에 필요한 비용과 우리가 감당할 수 있는 비용 등을 비교하면서 그때 보장받거나 도움받을 수 있는 제도들과 혜택에 대해서 이야기했다. 그러고는 당장 더 정밀하게 검사를 받을 수 있는 대학병원을 알아보았고 가장 빠른 시일을 골라 진료를 예약하기도 했다. 그것으로 불안해하는 아내를, 다른 누구보다 나를 안심시킬 수 있었다.
그리고 나는 그 일이 우리 두 사람을 더욱 단단하게 만들어주었다고 생각한다. 이전에라면 더 크게 화를 내거나 다투거나 더 오래 화해하지 않을 만한 일들도 그때를 생각하면, 정말 별게 아닌 문제가 되어버릴 때가 많았기 때문이다. 여전히 서로를 탓하고 책임을 따지고 상대방이 잘못했던 일들을 들추며 서운해하는 일들은 계속되었지만, 되도록 오래 지속하려고 하지 않았다. 무엇보다 우리가 가장 걱정하고 염려했던 최악의 경우는 아직 일어나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예상했던 것에 비해 이후의 검사 과정은 복잡하고 오랜 시간을 필요로 했다. 그나마 다행인 것은 아내가 새로운 병원의 의사를 마음에 들어 했다는 점이었다. 단호하고 분명한 말투가 듣기에 따라 다소 불친절하게 느껴지기도 했는데 문제가 되는 곳을 살피고는, 수술을 하는 것도 좋지만 그것은 선택의 문제이고 경과를 지켜보는 것도 나쁘지 않다고 설명했다. 그럼에도 내심 걱정이 되는 것과 여전히 우리를 불안하게 만드는 염려들에 대해 내가 물었을 때 그는 웃었다. 경우에 따라 상대방을 무안하게도 민망하게도 만들 수 있을 만한 표정이었으나 우리에게는 전혀 그렇게 느껴지지가 않았다. 그러니까 괜한 걱정을 한다는 듯한 그 가볍고 다정한 웃음이 아내와 나를 무척 안심하게 해주었다.
얼마 전에 나는 우리를 편안하게 만들었던 그 표정에 대해 다시 떠올린 적이 있었다. ‘실종아동찾기협회’의 서기원 대표를 만났을 때였고, 그에게서도 비슷한 이야기를 들었다. 신정역 3번 출구에서 도보로 5분 이내 거리에 협회 사무실이 있었다. 따로 간판이 있는 것은 아니었고, 입구에 작은 표지판을 붙여두었는데, 승강기 없이 오래된 4층 건물의 꼭대기였다. 아래로는 보습학원이 들어서 있었다. 그는 그곳을 곧 비워야만 한다고 했고, 이만한 월세에 이만한 평수를 다시 얻기는 어려울 것 같다며 걱정했다. 어디로 가게 될지에 대해서는 아직 결정된 것이 없었다.
그는 같은 연배의 내 아버지에게는 없는 다부진 체격을 가지고 있었다. 그가 나고 자란 남원과 내가 성장한 소도시는 그리 멀지 않았고, 그의 딸은 나보다 한 살이 어렸다. 그러니까 그 외동딸 희영이가 27년 전 실종된 뒤로 그의 삶은 이전의 것과는 아주 달라져버렸다고 했다. 그런데도 누군가는 암담해하는 그에게 괜찮을 거라며 웃어주었다. 다만 우리 부부와는 달리 그에게는 그것이 별다른 도움이 되지 못했다고 했다. 위로를 받기에는 너무 큰 상처였고, 별일 아닐 거라는 말은 무성의하게 들렸을 것이다. 그러고는 아주 긴 이야기들이 이어졌다.
나중에 나는 당시의 대화를 담은 녹취록과 메모들을 정리하면서 그 둘의 차이에 대해 여러 번 되새기게 되었다. 똑같이 웃었을 뿐인데 어떤 경우는 왜 위안이 되고, 다른 경우는 무책임해지는 것일까. 다르긴 다른데 무엇이 다른가. 결국에는 신뢰의 문제 때문이 아닐까, 나는 생각했다.2
1994년 4월 27일 수요일, 전북 남원시 향교동 놀이터에서 당시 열 살의 희영이가 실종되기까지 징후로 보일 만한 일은 이미 여럿 있었다. 복잡하게 생각할 문제가 아니었다. 불길하고 예사롭지 않은 일들이었으므로 무언가 방비하고 주의를 기울여야만 했다. 대책을 마련하거나 각별히 신경을 쓰거나 조심해야 할 것들, 피할 수 있다면 피해야만 하는 것이 무엇인지 서둘러 챙겼어야 했다. 다만 그때의 서기원은 대수롭지 않은 일들이라 여겼고, 그보다 더 나쁜 상상을 하지 못했을 뿐이었다.
희영이 앞으로 온 발신자 불명의 우편물을 처음 발견했을 때도 마찬가지였다. 정갈한 글씨체로 공들여 적은 ‘행운의 편지’였다. 영국에서 처음 시작되었고, 암살되기 전 케네디도 받은 적이 있다는 그 유명한 편지를 아이에게 건네면서도 서기원은 별다른 걱정을 하지 않았다. 적힌 대로 따르지 않을 경우 혹시라도 생길지 모르는 흉한 일들에 대해 경고를 하기는 했으나, 위협적인 데라고는 전혀 없었다. 그랬으므로 희영이도 그것을 구태여 베껴 적거나 다른 누군가에게 전달하려 하지 않았다. 대신 그로부터 며칠 뒤, 서기원은 어디서도 희영이를 찾을 수 없게 되었다.
그보다 몇 해 전에는 운영하던 공장에서 두 번이나 화재가 나기도 했다. 목재와 칠을 위한 화학약품 등을 다루던 곳이라 한 번 번진 불길은 좀처럼 잡히지 않았는데 그것으로 거의 모든 것을 잃을 뻔했다. 금전적인 피해가 적지 않았고, 전소된 현장에서 건질 수 있는 거라곤 전혀 없었다. 서기원의 어머니는 그 사고가 신앙과 회개의 문제 때문이라고 여겼다. 오직 그것만이 아들에게 당장 필요한 것이라고 조언했고, 그러지 않을 경우 생길 수 있는 더 불행한 일들에 대해 염려했다. 그럼에도 그는 어머니의 말을 따르지 않았다. 무엇보다 아직 더 잃지 않은 것이 무엇인지 그때로서는 알 수 없었기 때문이었다. 오히려 이미 잃어버린 것을 복구하는 데 더 애를 썼다. 수십 명의 직원 중 크게 다치거나 죽은 사람은 없었다. 그들에게 지급해야 할 급여가 만만치 않았다. 부도를 내거나 파산을 신청하는 대신 대출을 받아 인건비를 마련했다. 임금을 받은 그들 중 대부분은 공장으로 돌아오지 않았다.
이후로는 화재의 위험에서 비교적 안전한 골재 사업을 시작했다. 기존의 공장은 조카에게 맡기고 여행사와 광고사도 새로 인수했는데, 나름 수완이 좋았다. 투자한 부동산도 호황을 누렸다. 그러니까 화재로 잃은 것들을 모두 재건하는 데 겨우 3년이라면 나쁘지 않았다. 다만 더 많은 시간이 흐른 뒤에 서기원은 여기에 대해 전혀 다른 생각을 품게 되었다.
3년 만에 그가 다시 찾게 된 것들은 결코 적지 않았다. 단독주택과 고급 승용차를 소유하게 되었으며, 이미 가진 것들을 여러 번 다시 되풀이해서 살 수 있을 만큼 자산도 충분해졌다. 지역사회에서 그의 입지나 영향력도 함께 커진 덕분에, 머지않은 지방선거에서 유력한 공천 후보로도 거론되었다. 그러니까 다른 것 없이 오로지 그런 이유 때문에 자신의 하나뿐인 딸아이를 위험에 빠뜨린 거라고 그는 짐작했다. 누군가 자신의 재산을 노리고 벌인 범행일 거라고 생각했던 것이다.
어쩌면 그것과는 전혀 다른 문제 때문이었을 수도 있다. 공장에 처음 화재가 났을 때부터 앞으로의 그의 미래는 이미 정해져버렸던 걸지도 몰랐다. 내가 그걸 하지 않았기 때문이 아닐까, 서기원은 후회했다. 그래서 결국 이런 사달이 벌어진 것 아닌가. 어머니는 거기에 대해 분명한 경고를 남겼으나 정작 자신은 줄곧 모른 척해왔기 때문이었다. 그리고 나는 이 일화가 서기원으로부터 들은 이야기 중 가장 설명하기 어려운 부분이라고 생각한다. 그럴 만한 충분한 이유가 있어서 설득되었다거나 합리적인 수준에서 납득했다기보다는 단순히 믿거나 믿지 않거나, 둘 중 무언가를 선택할 수 있었을 뿐이었다.
1986년 서울 아시안게임이 개최된 그해, 어머니는 당시 기도원에서 보았다는 환영에 대해 서기원에게 처음 들려주었다. 아무래도 공장에 불이 날 것 같다는 것이었다. 아직 사고가 일어나기 전이었고 그런데도 화재에 취약한 것들을 미리 치우거나 소화기를 여럿 준비해서 대비하라는 말 대신 어머니는 그에게 서둘러 회개하기만을 권했다. 두 해 뒤에 다시 같은 사고가 발생했을 때도 마찬가지였다. 어머니는 이번에도 얼마 뒤에 일어날 사태에 대해 미리 경고했으며, 그런 일들은 정확하게 현실에서 반복되어 나타났다. 그리고 어머니가 세 번째로 그가 잃게 될 것들에 대해 경고했을 때, 서기원은 이전과는 조금 다른 마음가짐이 되었을 것이다. 두 번의 화재로 이미 잃은 것이 많았다. 그가 가진 거의 모든 것들이었고, 혼자서는 감당하기 버거운 시련이었을 것이다. 그럼에도 그걸 모두 견디고 버텨낸 것도 그였다. 무너진 것을 추스르고 도로 세우는 동안, 서기원은 더욱 단단해졌다. 다만 어머니의 기대와 달리 그게 신앙심은 아니었다. 그보다 더 믿는 것이 있었다면, 아마 자기 자신이었을 것이다. 스스로의 선택과 확신 덕분에 더 많은 것을 얻을 수 있었을 테니까. 무엇보다 이번에도 겨우 그 정도를 빼앗기는 거라면, 별로 아쉬울 것이 없었다. 일부를 잃어도 아깝지 않을 만큼 벌써 많은 것을 가졌다고도 생각했을 것이다.
결과적으로만 보자면, 서기원은 어머니의 바람대로 되어버렸다. 그를 만나는 동안 나는 여러 번 그의 믿음을 확인할 수 있을 만한 말들, 이제는 목회자의 길을 걸으면서 더욱 무겁게 짊어지게 된 순종과 회개의 다짐들에 대해 들을 수 있었다. 그가 진짜 그렇게 믿고 있다는 사실을 나는 전혀 의심할 수 없었는데, 그럼에도 그의 신실한 믿음을 그대로 나의 신앙심의 계기로 삼게 된 것은 아니었다. 바로 이 둘의 차이가 서기원에게도 있었을 거라고 생각한다. 그게 아마 어머니의 뚜렷한 경고를 그가 그대로 따르지 않았던 이유이기도 했을 것이다. 어머니의 말을 의심해서가 아니었다. 그러니까 애당초 모든 것을 아주 잃은 뒤에야만 가질 수 있는 믿음이 아니었을까. 서기원으로서도 그 일이 있고 몇 해가 더 지나서야 품을 수 있는 마음들이었다. 무엇보다 자신이 잃게 될 전부가 희영이일 거라고 그때는 조금의 짐작도 하지 못했다.3
언젠가 나는 출간된 소설의 후기를 남기며 이런 문장을 쓴 적이 있었다.
“무엇이든 잘 믿지 못하는 사람은 어쩌면 다른 무언가를 맹신하는 사람일지도 모른다.”
서기원의 이야기를 들으면서도 이와 비슷한 문장을 나는 여러 개 떠올렸는데, 맥락이나 의미는 많이 달라져 있었다. 그러니까 도대체 무엇이 그를 믿지 못하게 만든 것일까. 그런 다음에 의지하게 되는 것은 어떤 종류의 것인가. 그것이 왜 신용이나 신뢰보다 신앙에 더 가까운 문제가 되는 것일까. 그로부터 어떤 것은 합리적인 의심이 되고 다른 무엇은 왜 맹목적이 되는가. 그 둘의 차이가 얼마나 같고 얼마나 모호하게 다른 것인지에 대해 나는 자주 생각하게 되었다. 그러니까 어떤 불신이 그의 믿음을 단단하게 만들었나. 이것은 유독 서기원에게만 해당하는 이야기가 아니었다.
내가 들었던 또 다른 사례 한 가지를 소개하자면 이렇다. 장애아를 둔 부모였고, 어느 날 아이가 보이지 않았으며, 당연하게 파출소로 서둘러 달려갔을 뿐인데 그곳에서 전혀 예상치 못한 말을 들었다고 했다. 여기는 그런 곳이 아니라는 것이었다. 1980년대, 아직 공권력의 권위적인 분위기가 남아 있던 시절이었다. 친절한 민원 서비스 같은 건 기대하기 어려웠고, 대신 여기가 무슨 애들이나 찾아주는 덴 줄 아느냐는 호통과 알아서 잘 찾아보라는 면박만 당했을 뿐이었다. 실제로 아이는 집에서 멀지 않은 곳에서 금세 발견되었다. 문제는 아이를 진짜 잃어버리게 된 다음의 일이었다. 부모는 한국에서는 잃어버린 아이를 찾을 수 없다고 이미 확신하고 있었고, 남은 아이들을 지키기 위해 연고가 없는 강원도로 떠나버렸다. 그리고 그로부터 십수 년이 지나서야 실종자의 동생이 ‘실종아동찾기협회’의 서기원 대표를 찾아오게 된 것이다. 동생은 사회복지학을 전공했고, 실종자 가족들이 도움받을 수 있는 지원 정책들에 대해 최근에 수업에서 알게 되었는데, 정작 부모님이 경찰서 방문하기를 두려워한다고 토로했다. 긴 설득 끝에 서기원은 그들의 부모와 동행해 DNA를 채취할 수 있었다. 그러고는 불과 10개월 만에 민간 재단에서 운영하는 장애인시설에서 아이를 찾을 수 있었던 것이다.
이 이야기가 어떻게 들리는가.
황당한가.
나도 처음엔 그랬으니까.
고작 파출소에서 들었던 몇 마디의 타박이 아이를 절대 찾을 수 없을 거라는 확고한 믿음으로 굳어진다는 게 나로서는 몹시 당혹스러웠다. 그러나 이후로 서기원에게서 듣게 되는 이야기들도 크게 다를 것이 없었다. 무엇이 그를 믿지 못하게 만들었나. 어떤 불신이 그의 믿음을 강철처럼 단단하게 만들어버렸나. 적어도 내가 알게 된 것은 이렇다. 마땅히 믿어야 하는 것에 대한 신뢰를 잃었을 때, 대안적으로 의지할 만한 것들이란 매우 한정적이고 거의 맹목적이라는 것.4
그날 수요일 오후, 희영이가 마지막으로 목격된 시각에 서기원은 공사 현장을 살피고 있었다. 그의 명의로 된 실내 골프 연습장이었고, 내부에 회원들이 이용할 만한 휴게 공간을 새로 시공하는 중이었다. 연습장 한편을 따로 구획해서 선반이나 조리 시설 등을 들인 뒤 간단한 식음료를 판매할 계획이었는데, 누구보다 희영이가 운동을 하면서 잠깐 쉬기에도 좋을 거라고 그는 생각했다.
희영이는 또래에 비해 달리기를 잘했고 체격도 작은 편이 아니었다. 부모를 닮아 운동신경이 좋았는데, 특히 아이의 엄마는 춘향제 기간 동안 광한루에서 열리는 ‘춘향그네뛰기’ 대회의 수상자 출신이기도 했다. 범상한 실력은 아니었다. 제5공화국 초기, 민족문화의 계승과 국학에 대한 관심 고취라는 명분으로 여의도 광장에서 대규모로 개최된 ‘국풍81’에서 그네뛰기 전국 대표로 시범경기를 치를 정도였으니까. 서기원은 희영이에게도 못지않은 재능이 있다고 생각했다. 유전적으로나 경제적으로나 부족할 것이 없었다. 희영이가 막 초등학교에 입학할 무렵 서기원은 인근의 골프 연습장 한 곳을 인수하면서 서울에서 세미프로를 레슨 강사로 초빙했다. 매장 운영권과 남원에 전셋집을 함께 제공하는 호조건이었다. 당시에는 아직 박세리가 프로선수로 데뷔하기도 전이었고, 롤 모델로 삼을 만한 인물도 마땅한 편이 아니었다. 그럼에도 서기원은 사업가다운 안목으로 성장 가능성 높은 유망주에게 투자를 아끼지 않았다.
오후 5시경, 처제에게서 처음 전화를 받았을 때 그는 공사 현장을 챙기느라 정신이 없었다. 생각해보면, 그 무렵 그렇지 않은 날은 거의 없었다. 해야 할 일들은 좀처럼 줄지 않았고, 오히려 살피고 간수해야 할 일들만 더욱 늘어갔다. 그러는 동안 아이를 돌보는 일은 늘 처가의 몫이었다. 연습장과 그의 집은 백여 미터가량 떨어져 있었고 거기에서 네 집 정도를 사이에 두고 처가가 있었다. 그러니까 그 세 곳 중 어디에도 없다면 분명 집 앞 놀이터일 거라고, 그는 생각했다. 불안해하는 처제에게도 그곳을 먼저 찾아보라고 대수롭지 않게 조언했다. 그러면서도 곧장 차를 끌고 집으로 향했다. 걸어서 가더라도 3분 안쪽으로 도착할 만한 거리였다. 뛰어간다면 운전을 하는 것보다 더 빠를 수도 있었다. 그럼에도 그는 핸들을 잡았고, 숨이 찰 이유가 하나도 없는데도 어쩐지 달리기를 할 때처럼 가슴이 빠르게 뛰고 있었다.
희영이를 마지막으로 목격한 사람은 놀이터 인근의 슈퍼마켓 주인이었다. 처제가 도착하기 한 시간쯤 전, 이곳에서 아이를 보았다고 증언했다. 겨우 한 시간이라면 그리 멀리 가지 못했을 거라고 서기원은 생각했다. 그는 당장 공사 중이던 현장의 인부들에게 전화를 걸었고, 사정을 말한 뒤 함께 아이를 찾아주기를 부탁했다. 그들도 희영이를 잘 알고 있었다. 서기원과 그의 아내는 남원에서 나고 자랐고, 희영이 역시 마찬가지였다. 그들 대부분은 서기원의 친구이거나 선후배이거나 아이의 ‘삼촌’ 들이었다. 그러나 그들 중 누구도 이후에 희영이를 다시 본 사람은 없었다.
저녁 7시를 넘기자 주변이 어둑해지기 시작했다. 그사이 광한루와 요천강 일대를 돌아보았으나 성과는 전혀 없었다. 인근 놀이터나 남원역 주변도 사정은 마찬가지였다. 서기원은 그 밖에 아이가 갈 만한 여러 곳을 더 떠올렸으나 그보다는 먼저 파출소로 향했다. 아직까지 행방을 알 수 없는 거라면 사고가 난 걸지도 몰랐다. 수색보다는 수사가 필요한 문제가 될 수도 있었다. 더 늦기 전에 도움을 받아야만 했다.
남원으로 연결된 큰 도로는 세 군데 정도였고, 지금이라도 서둘러 전주와 함양, 구례 쪽 검문소를 통제한다면 아이를 찾을 수 있을 거라고 그는 기대했다. 그럼에도 당시 담당 경찰관의 의견은 달랐다. 무엇보다 아직 범죄와의 관련성을 알 수 있을 만한 증거가 없기 때문에 함부로 도로를 차단할 수는 없다고 했다. 그러고는 웃었다.
“별일이야 있겠어요?”
서기원을 안심시키며, 친절하게 웃어버렸던 것이다.5
괜찮다, 별일 아닐 것이다, 같은 위로가 당시의 그에게는 전혀 도움이 되지 않았다. 무엇보다 어떤 해결책이 있을 거라고 기대한 공공기관이 할 만한 공식적인 답변으로 보기에는 무책임하기까지 했다. 그로서는 도무지 이해가 되지 않았다. 아무것도 하지 않으면서 대체 뭐가 괜찮다는 건가. 뭘 기다려야 한다는 거지? 범죄와의 관련성? 증거라니? 그걸 찾아달라고 이러는 것 아닌가? 그런데도 뭐? 아이를 찾으려면 먼저 범죄를 증명하라고? 이런 상황에 적당한 매뉴얼이라도 있어야 되는 것 아닌가? 뭐라? 법이 없어? 아무것도 하지 않고 기다리는 것. 그것이 매뉴얼이라고 했다.
그러는 사이 자정을 넘기고 있었다. 시간은 빠르게 흘러갔다. 날이 밝자마자 현수막과 전단지를 제작한 뒤 남원 곳곳을 돌아다녔고, 인근의 곡성과 구례, 오수, 정읍 등으로도 움직였다. 서기원이 소유하고 있던 회사의 직원들과 활동하던 단체의 회원들, 친인척과 지인들에게 연락해서 도움을 청했다. 희영이의 친구들에게 당시의 정황을 상세하게 물은 뒤 꼼꼼히 기록해두기도 했다. 그럼에도 그의 머릿속에서는 사고라는 생각이 떠나지 않았다. 지금 찾지 못하면 이후에도 찾지 못할 거라는 불안감이 가시지 않았다. 입원실과 응급실을 갖춘 병원들을 모두 찾아다녔고, 영안실과 장례식장마다 연락처를 남겨두었다. 골프 연습장 회원 중에는 지역방송국 국장들도 있었고 그들에게 부탁을 하기도 했다. MBC에서 긴급하게 오후 뉴스 자리에 한 꼭지를 내줄 수 있다는 연락을 받았다. 경찰이 희영이에 대한 실종 수사 본부를 설치한 것은 뉴스가 나간 다음 날이었다. 사건이 발생하고 꼬박 사흘 만의 일이었다.
슈퍼마켓 주인이 희영이를 마지막으로 목격한 시간과 서기원이 처제에게서 연락을 받은 시간 간의 차이는 대략 한 시간 정도였다. 그 한 시간 동안 아이의 걸음으로 어딘가를 이동했다면, 그리 멀리 가지 못했을 거라고 그는 생각했다. 차를 이용했다면 그보다 더 먼 거리겠지만, 검문과 통제만 이뤄진다면 아직 찾을 수 있는 가능성은 남아 있었다. 그러나 사흘이라면 달랐다. 희영이가 태어나던 해에 개통된 88올림픽고속도로는 광주와 대구를 고작 두 시간 만에 연결해주었다. 무인 과속 카메라도 없던 시절이었다. 마음먹고 빠르게 달리면 남원에서 서울까지 세 시간 안에 도착할 수도 있었다. 그런데 사흘이라니……. 대한민국이 아니라 세계 어디든 갈 수 있을 만한 시간이었다.
뒤늦게 수사를 시작한 경찰은 서기원의 집 안에 감청 장치를 설치하고, 주변인을 탐문하기 시작했다. 그러나 사흘 전의 일을 뚜렷하게 기억하는 사람은 많지 않았다. 대신 방송 후 여기저기에서 희영이를 목격했다는 제보들이 쏟아졌다. 전주-남원 간 국도변에서 누군가 걸어가는 것을 보았는데, 그게 아무래도 방송에 나온 여자아이 같다고 했다. 군산에서 어린아이를 태운 탱크로리를 보았다는 제법 구체적인 목격담을 들었을 땐, 그 시간대에 통과한 유사 차량들을 모두 찾아보기도 했다. 부산이나 강원도에서 걸려온 전화도 있었다. 처음 들어보는 행정구역의 지하도를 알려주기도 했고, 네 시간 반이나 걸려서 현장에 도착했더니 정작 제보자가 나타나지 않을 때도 있었다. 그런 경우 경찰로부터 해당 발신자의 전화번호를 확인해보면 태반이 공중전화였다. 한번은 허위 제보자를 붙잡은 적이 있었다. 평범한 사람이었다.
“진짜 오는지 안 오는지 확인하고 싶었어요.”
겨우 그런 이유로 서기원은 전국 어디든 전화를 받고 가지 않은 곳이 없었다. 경찰들은 움직이지 않았다. 인력은 늘 부족했고, 희영이 일에만 매달릴 수는 없는 일이었다. 그리고 어느 순간이 지나자 서기원은 나름대로 제보 전화들의 종류를 구분할 수 있게 되었다. 어떤 것은 들으면서도 아니라는 걸 알 수 있었다. 그래도 가지 않을 수 없었다. 거짓말이라는 것을 알면서도 달리 할 수 있는 게 없었기 때문이었다. 우선은 무작정 믿을 수밖에 없었다. 들어가는 비용도 적지 않았다. 한 달이 지나면 집 한 채가 사라질 만큼의 액수였다. 그러니까 6개월이 지났을 때, 서기원은 인정할 수밖에 없었다. 이런 상태로는 할 수 있는 게 아무것도 없었다. 결정적인 단서나 제보가 없다면 불가능한 일이었다. 무엇보다 괴팍한 행정 시스템이 문제였다. 한국에서는 결코 잃어버린 아이를 찾을 수 없다고 그는 확신해버렸다.6
희영이가 실종되고 서기원은 현관문을 잠가본 적이 없었다. 문이란 문은 모두 열어두었고, 야심한 밤에 개 짖는 소리 하나에도 긴장을 늦추지 않았다. 작은 기척이라도 들리면 집 안의 불도 켜지 않은 채 그는 조심스럽게 밖으로 나가보았다. 그러고는 몰래 숨어서 골목 안을 살폈다. 언제라도 올 수 있다고 그는 생각했고, 그게 다름 아닌 바로 이 순간일지도 몰랐다. 그러나 주변은 한 면의 어둠뿐이었다. 길 한가운데 누군가가 서 있더라도 알아보지 못할 만큼 완벽하게 가려져 있었다. 그럼에도 만약 저기 어딘가에 누가 있다면, 그게 범인일 거라고 그는 짐작했다.
희영이와 비슷한 사례들에 대해 그는 이미 들은 것이 있었고, 그중에서도 가능성 높은 경우들을 따로 추려낼 수 있었다. 고작 열 살짜리 아이가 이유도 없이 집을 나간다? 그런데도 아무도 본 사람이 없다? 면식범일 확률이 높았다. 그러고는 당일의 상황을 여러 번 되새기면서 주변의 사람들을 의심하기 시작했다. 그가 운영하고 있는 사업장의 개수만 하더라도 적지 않았다. 그럼에도 고용된 직원들과 거래처 사람들의 이름들을 일일이 떠올렸다. 소속되어 있거나 활동하고 있던 단체도 상당했다. 동문회와 청년연합회, 채무 관계에 있던 사람들, 단골로 자주 가던 식당이나 부동산, 카센터와 골프장 회원들, 그들 중 대부분은 희영이를 찾는 데 도움을 준 사람들이기도 했다. 한곳에서 오래 살면서 자연스럽게 알게 된 사람들도 있었다. 그런데 그 사람은 이름이 뭐였지? 도대체 언제부터 내게 접근한 거지? 그 모든 것들이 수상해 보였다. 다만 누가 진범인지는 단정할 수 없었다. 그랬으므로 그에게는 주변 사람 모두가 가능성 있는 용의자가 될 수밖에 없었다.
아주 일상적인 대화조차 그는 주의 깊게 들었고, 단서가 될 만한 작은 실마리 하나라도 놓치지 않으려 했다. 그러니까 아까부터 왜 자꾸 이쪽을 쳐다보느냐고, 그때 그런 말을 한 의도가 대체 뭐냐고, 따지고 추궁하고 싶을 때가 한두 번이 아니었다. 우리 애가 없어졌어요. 혹시 그게 당신이에요? 당신이 그런 겁니까? 그 순간들이 그에게는 몹시 미안하고 고통스러웠다. 그럼에도 그렇게 하지 않을 수 없다는 사실이 그를 더 괴롭게 만들었다.
어쩌면 전혀 예상 밖의 사람일 수도 있었다. 한 번도 의심받은 적 없고, 용의선상에 제대로 오른 적이 없는 누군가일지도 몰랐다. 다른 누구도 아닌 가족 중 한 사람일 수도 있었다. 그러니까 경찰에게 자신부터 제대로 수사하라고 그는 호소했다. 내가 범인일 수도 있지 않느냐, 왜 그런 것도 의심하지 않느냐. 제발 방치하지 말고 성의를 좀 보이라고, 그렇게 멀뚱히 가만히만 있을 게 아니라 뭐라도 좀 해주기를 그는 간절히 바랐다.
주변의 그 누구도 그런 서기원을 말리거나 비난하지는 않았다. 그러나 느낄 수는 있었다. 어떤 대화가 그의 등장만으로 일순간 멈춰버린다거나, 일부러 무언가를 말하려 하지 않는다거나, 자기 한 사람 때문에 다른 많은 사람이 노력하고 있다는 것을 그는 감지할 수 있었다. 그것으로 예전의 관계들을 모두 잃어버린 셈이었다. 이제 아무도 그에게 상스럽고 격의 없는 말을 해주는 사람이 없었다. 가볍게 묻는 안부에도 조심스러운 태도를 갖추었다. 서기원은 그 위태로운 시기를 신앙의 힘으로 겨우 견딜 수 있었다고 내게 말했다. 모든 것을 의심한 뒤에 얻은 단 하나의 믿음이었다.
대신 이전과는 전혀 다른 부류의 사람들을 만날 수 있었다. 남원 시내에는 밤늦게 희영이 또래의 아이들이 출몰한다는 곳이 여럿 있었다. 그런 곳을 수소문하고 돌아다니는 동안 그는 자신도 모르게 전혀 다른 세계에 발을 들여놓게 된 것이었다. 관리하지 않는 공터를 찾아다녔고, 오래 방치된 폐차나 공원의 정자 아래를 살폈으며, 거기에서 꼭 희영이만 한 아이들을 발견하게 되었다. 서기원은 그들에게 희영이의 사진을 보여주고, 혹시 뭔가 아는 것이 있느냐고 물었다. 의미 있게 들을 만한 대답은 별로 없었다. 그러나 그것 때문에 마음이 아팠던 것은 아니었다. 더구나 실종된 것은 내 딸 하나인데, 왜 자꾸 이런 아이들을 보게 되는 건지 그로서는 알 수 없었다. 겨우 희영이만 한 아이들이 소유주가 불분명한 폐가 안에서 능숙하게 술을 마시고 담배를 피우는데도 아무도 돌보거나 책임지는 사람들이 없다는 것도 이해하기 어려웠다. 무엇보다 도대체 이 많은 아이들은 다 어디에 있었던 것일까. 왜 이전에는 보지 못했던 건지 그는 스스로에게 여러 번 되물어야만 했다.
서기원은 아내와의 긴 상의 끝에 가지고 있던 사업체들을 처분하기로 했다. 각자의 것을 나눴고 아내 혼자서 최소한의 생계를 유지할 수 있을 만한 대안도 마련했다. 무언가를 새로 시작하더라도 충분할 만큼 아직 넉넉한 자본이 남아 있었다. 다만 이대로 간다면 머지않아 사라질 것들이었다. 본래 희영이의 몫이기도 했고, 되도록 의미 있게 쓰는 것이 좋겠다고 여겼다. 어디에 쓸지 미리 계획해둔 데가 있었다. 희영이가 아니라면 희영이 때문에 알게 된 아이들에게 모두 돌려줄 생각이었다. 그러니까 딸아이가 실종되고 이듬해, 서기원은 앞으로 자신이 10여 년간 헌신하게 될 ‘남원시 소년소녀가장돕기 청년회’를 창단하게 되었다.7
만약 불행히도 당신이 아이를 잃어버리게 된다면, 성급하게 찾아 나설 생각은 하지 말라고 서기원은 조언한다. 개인이 혼자서 감당할 만한 일은 아니라는 것이었다. 대신 경찰서를 찾아가 드러누우라고, 피켓을 들고 시위를 하든 인터넷에 올리든 사람들의 이목을 끌어야 한다고. 마땅히 정부와 수사기관이 해야 할 일들이었다. 그럼에도 그러지 않으면 아무도 도와주지 않는다고 그는 토로했다. 무엇보다 애타는 마음에 생업을 포기하고 전국을 헤매는 순간, 특히 그게 아이의 아버지라면 더더욱, 한 가정은 경제적인 이유로 파탄에 이를 수밖에 없다고 경고했다. 그 역시 다르지 않았다. 아이를 잃고 모든 것을 잃었다는 말은 단순한 비유가 아니었다.
그럼에도 청년회 활동을 통해 만난 아이들이 아니었더라면, 서기원은 자신이 더 많은 것을 잃었을 거라고 생각했다. 적어도 덕분에 무기력하게 무너지는 일은 없었다. 여전히 그가 책임지고 돌봐야 할 아이들이 있기 때문이었다. 대부분은 부모가 없는 결손가정 아이들이었고, 그에게는 이제 희영이가 없었다. 그런데도 아직 할 수 있는 일들이 남아 있었다. 두 번의 화재에도 불구하고 고작 3년 만에 재기에 성공한 저력이 그에게는 있었다. 이번에도 자신이 해야 할 일이 무엇인지 그는 정확히 파악하고 있었다.
희영이를 찾아 전국을 돌아다니는 동안, 비슷한 처지의 부모들을 만났고, 자신이 겪은 똑같은 불행이 계속되고 있다는 것을 깨닫게 되었다. 그들과 연락처를 공유하고, 필요한 정보와 대처해야 할 방법 등을 나누며 지금의 ‘실종아동찾기협회’를 조직했다. 서로를 위로하기도 하고 충분한 위안을 받기도 했다. 그중에는 자신을 향한 희망들도 있었을 것이다.
“꼭 찾을 수 있을 거예요.”
여전히 그럴 만한 단서나 정황은 전혀 없는데도, 같은 아픔을 가진 사람들만이 할 수 있는 그런 무책임한 말들에도 기운을 얻었을 것이다. 그리고 서기원은 앞으로 자신이 무얼 해야 할지 구체적으로 계획하기 시작했다. 누구보다 그 역시 아이를 찾을 수 있을 거라고 믿고 싶었다. 그러나 그게 잘 되지 않았다. 잘 되지 않을 거라는 이 불손한 의심이 그를 괴롭게 만들었다. 그에게 지금 필요한 것이 있다면 우연이나 운은 아니었다. ‘행운의 편지’를 떠올리며 그때 나라도 공들여 썼어야 했다는 후회 같은 게 아니었다. 더 많이 기도하고 절실한 사람에게만 선택적으로 내려주는 믿음의 보상이 아니라, 누구에게나 보편적으로 적용 가능한 법과 시스템이어야 했다. 그걸 가지기로 서기원은 마음먹었다.
그사이 서울에 있던 누나에게서 신학을 공부해보는 게 어떻겠냐는 제안을 받았을 때, 그는 조금의 망설임도 없었다. 그것이 자신의 당연한 소임이라고 여겼기 때문이었다. 이후로는 더 많은 사람을 만나고, 설득하기 시작했다. 지역에서 활동했던 기반이 나름 도움이 된 적도 많았다. 국회를 출입하면서 법률의 초안을 만드는 데 참여했고, 필요한 자문을 적극적으로 제공했다. 그리고 2005년 3월, 관련 법안이 본회의를 통과했다는 소식을 들었다.
같은 해 12월에 비로소 시행된 ‘실종아동등의 보호 및 지원에 관한 법률’은 사건 발생 시 경찰의 초동 수사 강화와 관련 정책 수립 및 가족 지원 등의 내용을 골자로 하고 있었다. 더욱이 실종을 인지하고도 신고하지 않은 채 아이를 보호할 경우 이에 대한 처벌 규정도 함께 마련되었다. 요컨대, 이후로 아이를 잃어버린 부모에게 괜찮을 거라고, 별일 아닐 테니 집에 가서 가만히 기다리고 있으라는 말 대신 법적으로 무언가 반드시 조치를 취해야 한다는 것이었다. 필요하다면, 도로를 차단하고 검문 검색을 강화하고, 통신장비를 이용해 위치를 추적할 수도 있었다. 또한 보호시설의 무연고 아동의 DNA유전자 샘플을 채취해서 부모와 대조할 수도 있었다. 무엇보다 그것으로 실종된 내 아이를 찾을 수 있을 거라는 기대를 겨우 품을 수도 있게 되었다. 서기원과 실종 가족들의 노력으로 이룬 성과였고, 희영이가 사라진 지 꼬박 11년 만의 일이었다.
그리고 그의 이야기는 여기서 끝났어야 했다.8
법안을 마련했으니 이제 기다리기만 하면 되는 일이었다. 공권력을 믿으며 전문적인 인력들이 무언가를 해줄 수 있을 거라고 그는 기대했다. 이전에 비해 눈에 띄게 달라진 점들이 있었다. 아동 실종 사건의 경우 초기 세 시간의 대응이 가장 중요하다는 것은 전문가들의 공통된 의견이었다. 이 때문에 신고가 접수되면, 해당 지역 지구대와 관내 실종 전담반이 동시 출동해 즉각적인 탐문수사를 시작하고, 민간 협력 체계를 통해 실종 아동에 대한 정보를 금융기관의 전광판이나 각종 지로용지, 이메일 등에 노출시켜 시민들의 제보를 유도하게 된 것은 대단히 유의미한 일이었다. 그렇게 찾게 된 아이들도 실제로 적지 않았다. 경찰청 역시 분기별로 50명의 실종 아동들의 사진과 인상착의를 포스터로 제작 배포했는데, 그러니까 거기에서 유독 희영이의 사진만 누락되어 있다는 걸 알게 된 것은 법안이 시행되고 몇 해가 지난 2017년 무렵이었다. 이전 분기에도 없었고, 혹시나 싶어 그보다 앞선 홍보물들을 살펴보았는데도 희영이에 대한 정보는 어디에서도 찾을 수 없었다. 더구나 겨우 58명의 동일한 사진만이 반복 제작되고 있었다. 서운한 마음에 여성아동청소년 경찰지원센터와의 간담회 자리에서 항의성 질의를 했을 때 그는 전혀 예상치 못한 답변을 들었다. 희영이는 실종이 된 게 아니라는 말이었다. 도무지 이해가 되지 않았다. 지금 무슨 말을 하는 것일까. 우리 희영이에 대해서 뭘 알고 하는 소리인가? 실종이 아니라면, 내 딸이 지금 어디에 있다는 말인가? 왜 자꾸 법이 그렇다는 말만 하는 것일까? 가출이라니? 고작 열 살짜리 아이가 대체 왜?
제2조(정의) : 이 법에서 사용하는 용어의 정의는 다음과 같다.
1. “아동 등”이라 함은 다음 각 목의 어느 하나에 해당하는 자를 말한다.
가. 실종 신고 당시 14세 미만 아동
그런데도 이런 기사는 또 뭐란 말인가.
2021년 4월 28일, 충북 청주에서 40대 여성에 대한 실종 신고가 접수되었다. 당일 저녁 9시 무렵 외출한 뒤 연락 두절 상태였고, 나흘이 되도록 수색에는 진전이 없었다. 더욱이 경찰은 주거하고 있던 아파트의 CCTV가 대부분 고장인 탓에 동선을 파악하기도 어렵다고 했다. 답답한 마음에 관리 사무실을 찾은 가족들이 직접 CCTV를 일일이 확인하기 시작했고, 거기에서 차량을 끌고 나가는 실종자를 발견할 수 있다. 무엇보다 수색의 단서가 될 수 있는 당시 시간 정보도 남아 있었다. 가족들은 경찰의 불성실한 수사에 항의했으나, 정작 돌아오는 말은 그들을 더 아프게 만들었다. 다른 사건이 많으니 이해해달라는 것이었다. 누가 누구를 이해하라는 것인가. 그 나흘 만에 실종자는 유서를 남기고 숨진 채로 발견되었다.
그럼에도 서기원은 여전히 대한민국 경찰이 가진 우수한 수사력을 신뢰한다고 말했다. 지금이라도 마음만 먹는다면 해결될 수 있는 문제들이라고 여겼고, 정작 희영이를 찾지는 못하더라도 누구의 소행인지는 밝힐 수 있을 거라고, 믿고 있었다. 다만, 그럴 의욕이 없을 뿐이었다. 한번은 결국 참지 못하고 화를 낸 적도 있었다. 현직 경찰관들을 대상으로 실종 사건에 대한 강연을 진행하던 중에 무기력하게 졸고 있는 모습에 분개해버렸다. 적어도 들으려는 시늉이라도 해야 하는 것 아니냐고, 최소한의 성의는 보여야 할 것 아니냐며, 당신들도 가족이 있지 않느냐, 언제든 나처럼 될 수 있다, 그땐 대체 누구에게 매달릴 거냐는 말은 차마 하지 못했다.9
반면에 이런 경우도 있었다. 누군가 그에게서 실종 당시의 정황을 더 자세히 듣고 싶어 했다. 2008년 민간 조사관 제도 도입을 위한 입법 공청회 자리에서였다. 서기원은 실종자 가족의 입장을 대변해서 토론자로 참석했는데, 수사 부진의 이유가 인력 부족 때문이라면 제도 도입을 통해 탐정 등의 민간 조사를 허용하거나 보조 수사 인력으로 활용할 수 있을 거라고 주장했다. 특히 현재의 실종 사건은 초동수사에 집중되어 있고, 이 때문에 장기 실종의 경우 미제 상태로 그쳐 있는 경우가 많았다. 이런 사건들에 대해 국선변호인제도와 마찬가지로 민간 조사관에게 의무적으로 할당량을 부여한다면, 적어도 누군가 내 아이를 함께 찾고 있다고 안심할 수 있지 않겠느냐고 그는 호소했다.
발언을 마치고 단상에서 내려온 그에게 낯선 남자가 다가와 명함을 내밀었다. 거기에는 여행사 상호가 적혀 있었으나, 남자는 자신을 정보기관의 직원라고 소개했다. 그러고는 희영이가 사라졌을 무렵, 평소와 다른 점은 없었느냐고 캐물었다. 예컨대, 아무 말도 없이 끊어버리는 전화라든가 주변을 배회하는 사람이라든가 발신자가 불분명한 우편물 같은 것. 서기원은 곧바로 희영이 앞으로 온 ‘행운의 편지’를 떠올렸다. 그러고 보면 분명 이상한 점이 있었다. 그 편지는 영국에서 최초로 시작되어 1년에 한 바퀴 돌면서 받는 사람에게 행운을 준다고 적혀 있었다. 다만 그런 장난을 치기에는 필체가 너무 정갈하다고 생각하긴 했었다. 맞춤법도 어딘가 달랐다. 남자는 그걸 자신이 좀 확인할 수 있겠느냐고 서기원에게 제안했다. 그러고는 아주 익숙하지 않은 단어들을 꺼내기 시작했다. 조청련, 사회 불안, 납치, 정부, 무엇보다 북한. 북한? 아직까지 국내에서는 공식적으로 보고된 사례가 없다는 말도 덧붙였다. 그럼에도 충분히 가능성이 있는 일이라고 남자는 설명했다.
통일연구원 북한인권연구센터에서 2015년 발행한 『북한에 의한 납치 및 강제실종』의 서문 일부를 인용하자면 이렇다. “강제실종이란 자신의 의지와 상관없이 정부 혹은 정부의 동의를 얻은 조직 또는 개인에 의해 체포되거나, 억류, 납치되는 경우를 의미한다. 이때 실종자의 행방 또는 생사에 대한 정보는 공개되지 않으며, 결과적으로 실종자는 법의 보호 영역 밖에 놓이게 된다. 강제실종을 자행하는 동기는 다양한데, 대개는 국정 운영을 위한 수단으로, 즉 국가 주도 억압의 기제로 이용되어 국제 인권 현안으로 등장하게 되었다. 즉 강제실종을 자행함으로써 국가 내부에 공포를 확산시켜 반정부 세력의 활동을 억압하기 위한 억지의 수단으로 사용되었던 것이다.”
누군가 이런 말을 들려준다면, 당신은 어떤 반응을 보이겠는가. 나는 이 문장을 쓰기 전에 여러 번, 이 이야기를 주변 사람들에게 들려주었고, 그때의 표정이 하나같이 어땠는지를 기억하고 있다. 지금 당신이 짓고 있을 그것도 별반 다르지 않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물론 나도 그랬으니까. 그러나 서기원에게는 달랐다. 희영이가 실종된 이후, 찾을 수 있는 단서나 증거가 전혀 없던 상태에서 유일하게 가능성을 확인할 수 있는 말이었다. 그러니까 어쩌면 멀지 않은 곳에서 자신의 반응을 살폈을 거라고 그는 추측했다. 편지를 받고 어떤 대응을 하는지, 평소에도 의심하고 경계하는 사람인지, 사소한 변화에도 위협을 느끼고 적절한 대처를 하는지 등을 파악했을 것이다. 그러나 당시의 서기원은 대수롭지 않게 넘겨버렸다. 그게 희영이를 대상으로 삼은 진짜 이유일지도 몰랐다. 아니더라도 최소한 편지에 남은 필적 감정을 의뢰하고, 혹시라도 남아 있을지 모를 지문을 채취하거나 거기에 적힌 맞춤법이나 문법이 특정 지역이나 단체에서 사용하는 것인지 확인할 수는 있었다. 그 남자의 말대로 충분히 가능성 있는 일이라고 서기원은 생각했다.
나는 사람들이 무얼 믿느냐에 따라 다른 것을 보게 된다고 생각한다. 아주 똑같은 것을 보고도 전혀 다른 말을 하는 것도 그 때문이라고 생각하는데, 지금껏 주로 그런 것들에 관해 써보려고 했었다. 서기원의 이야기를 들으면서도 마찬가지였다. 그가 믿는 것이 무엇인지 알고 싶었고, 그게 내가 가진 상식과 왜 다른지에 대해서 설명하고 싶었다. 그에게는 매번 다른 선택지가 없었고, 그럴 수밖에 없었으며, 그렇게 될 수밖에 없었다.
물론 처음부터 그의 의혹이 정당한 것일 수도 있었다. 실제로 그런 일들은 주변에서 이미 벌어지고 있고, 단순히 내가 몰랐던 걸 수도 있으니까. 알고 나면 누구에게나 분명하게 이해되는 일인데도 다만 내가 믿지 못했던 것은 아닐까. 그럼에도 서기원의 비극은 이런 종류의 것이 전혀 아니었다. 그보다는 자신이 믿고 있는 것이 진실인지 아닌지 확인할 기회조차 애당초 없었다는 것이다.
희영이에 대한 수사는 전혀 진전된 것은 없었으나, 경찰은 추후 증거가 될 만한 물품들을 모두 챙겨 가버렸다. 그중에는 물론 그 의심스러운 편지도 들어 있었다. 그리고 그 남자를 만난 이후, 서기원은 당시 수사 자료와 증거물 들을 요청했다. 그럼에도 돌려받은 것은 아무것도 없었다. 이미 십수 년이 지난 사건이었다. 아이의 행방을 알려줄 그 결정적인 편지를 제대로 보관하고 있는지조차 그로서는 전혀 확인할 수 없었다.10
사실, 나는 이 이야기의 결말에 대해 따로 생각해둔 것이 있었다. 여러 어려움에도 불구하고 기대할 만한 그의 미래라든지, 위로가 될 수 있을 만한 따뜻하고 희망적인 메시지를 남기고 싶었다. 그런데도 정작 쓰려고 보니, 그게 다 거짓말처럼 느껴졌다. 괜찮지 않은 사람에게 앞으로는 더 괜찮아질 거라고, 무책임한 말을 하는 기분도 들었다.
인터뷰를 진행하는 동안 나는 그에게 목회자로서 평소 어떤 제목의 기도를 하느냐고 한 번도 묻지 않았다. 무슨 대답이 돌아올지 이미 잘 알 것 같았기 때문이었다. 반면에 그의 미래에 대해 물은 적은 있었다. 그는 자신의 교회를 짓고 신앙생활에 전념하고 싶어 했다. 나름대로 세워둔 계획도 있었다. 그러기 위해서라도 누군가 협회를 대신 맡아줄 사람이 필요한데, 지금으로서는 전혀 대안이 없다고도 했다. 그러다가 나는 희영이에 대해서도 물었다. 어딘가에 있다면, 그게 어디일 것 같느냐는 질문에 그는 긴 생각을 하지 않았다. 다만, 어디에 있든 그게 좋은 곳은 아닐 거라는 대답을 하기까지 시간이 조금 걸렸을 뿐이었다.
“연락할 수 있는 상황이라면 벌써 연락을 했겠죠. 그렇지 못하다는 건, 그럴 만한 나쁜 사정이 있다는 거니까.”
그게 가장 가슴 아프다고 했다. 희영이에 대해 어떤 미래도 그릴 수 없다는 게. 그래도 어디서든 잘 지내고 있겠지, 함부로 기대하거나 낙관할 수 없었다. 그리고 나는 이 장면이 그에 대해 제법 정직하게 보여주고 있다고 생각했다.■ 임현
작가. 소설집 『그 개와 같은 말』, 중편소설 『당신과 다른 나』가 있다.
[출처] 에픽 Epic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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