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림이 있는 에세이

또 다른 여행을 꿈꾸며

박현웅, 화가

한번은 오랫동안 중정에 앉아 하늘을 올려 본 적이 있다. 바람이 불 때면 구름은 빠르게 이동했지만, 때론 하늘에 멈춰 있는 것 같았다. 나는 그것을 구름이 쉬어간다고 생각했다. 나그네가 잠시 구름을 보며 쉬어가듯 모든 것이 느려지고 정지된 것만 같았지만 세상은 앞으로 나아가고는 있었다.

정신없이 바쁘게 앞만 보고 달려왔던 시간이 어느 날 갑자기 멈춰 섰다. 불쑥 찾아온 불청객인 코로나19 팬데믹은 우리의 삶을 완전히 바꾸어 놓았다. 편하게 변화된 부분도 있지만 대체로 그동안 해왔던 생활이 불편해진 것은 사실이다. 이 시기를 의식한 것은 아니지만, 나는 오랫동안 살았던 북적거리며 에너지가 넘쳐나는 홍대 앞을 떠나 한적한 동네로 작업실과 집을 옮기고 내 생애 처음 하는 일들을 하나둘씩 해야만 하는 일상이 시작되었다. 전혀 생각지도 않았던 일들이었다. 

매일 나무에 물 주기, 매번 상당한 번식력에 놀라는 다양한 잡초 뽑기, 혼자 감당하기 벅찬 공간을 청소하고 관리하기, 브루잉 커피를 셀 수 없이 내리기 등등. 처음 몇 달간은 본업인 작업이 약간 뒷전이었지만, 차츰 요령이 생기면서 작업 시간을 어느 정도 되찾을 수 있게 되었다. 매일 해야 하는 일이고 게으름을 피우면 안 되는 일과이기는 하지만, 천천히 흘러가는 구름처럼 느릿느릿해도 괜찮다는 것을 알게 된 것은 2년이라는 시간이 훌쩍 지나서였다.

이상한 것은 이처럼 일과가 많아졌음에도 불구하고 그림 작업의 결과물은 줄어들기는커녕 훨씬 늘었다는 것이다. 그동안 깨달은 것이 있다면 세상에는 내 맘대로 되는 것이 하나도 없다는 것과 당장 내일 무슨 일이 생길지 누구도 전혀 알 수 없다는 것이다. 그래서인가. 세상을 바라보는 눈과 마음이 쉬어가는 구름처럼 잠시 멈춰 서서 주위를 바라보는 느림에 좀 더 가까워진 느낌이다. 

최근에 진행했던 작업도 ‘구름처럼 천천히 쉬어가며 여행하기’가 주제였다. 그동안 여행했던 곳들을 떠올리며 한 번쯤 앨범 정리를 해본다는 생각으로 그림을 그렸다. 우리의 여행은 언제나 뜻하지 않는 일들이 가득 실려 오는 화물칸의 가방 같은 기억들로 가득하다. 가는 곳마다 예상을 벗어나는 일들에 당황하고 해결하기를 반복하면서 쌓이는 에피소드의 가방들…. 마치 우리의 인생이 예상할 수 없듯이 말이다. 

나이를 먹어가면서 예상 밖의 난관을 해결하고 또 해결하며 기억의 가방은 점점 무거워져 간다. 하지만 예상대로만 흘러간다면 여행이든 인생이든 재미가 있을까? 적당한 불안이 주는 설렘이 있어야 더 새로운 하루하루가 되지 않겠는가. 그래서 나는 지난 2년의 시간을 조금 길었던 낯선 곳으로의 여행이었다고 생각하기로 했다. 그리고 오늘 나는 또 다른 새로운 여행을 꿈꾼다.  

* 홍익대학교 금속조형디자인과 및 동대학원 졸업. 개인전 30여 회, KIAF 외 다수의 아트페어·기획전 참여. 청와대, 정부미술은행, 삼성에버랜드, 삼성인력개발원, 블랙스톤 웰컴센터 작품 소장. 

[출처] 월간에세이 Essay
ⓒ 본 콘텐츠는 발행사에서 제공하였으며, 저작권법의 보호를 받으며 무단 전재, 재배포 등을 금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