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화의 숲을 거닐다 _ 아름답기에 더욱 비극적인 그녀들 _ 황지언

명화의 숲을 거닐다-2회

아름답기에 더욱 비극적인 그녀들

황지언, 미술칼럼니스트

1599년 9월, 로마 산탄젤로에서 한 여성의 사형식이 거행되었습니다. 그리고 이 소식을 들은 주변의 많은 사람들은 이를 보기 위해 몰려들었습니다. 그 이유는 그녀가 너무나도 아름다웠기 때문입니다. 그녀의 이름은 베아트리체 첸치(Beatrice Cenci, 1577~1599), 아름다운 외모와는 달리 자신의 아버지를 죽인 무거운 죄로 참수형을 당한 죄인입니다.

사실 베아트리체의 아버지인 프란체스코는 악행으로 유명한 사람이었습니다. 그는 에시리아 크로체라는 아름다운 여성과 결혼해 베아트리체를 포함한 7명의 자식을 얻게 되지만, 에시리아는 남편의 학대로 인해 많지 않은 나이로 세상을 달리하게 됩니다.

그 후 프란체스코는 루크레치아 페트로니와 재혼합니다. 하지만 그는 루크레치아는 물론 베아트리체에게까지 폭력과 함께 성적 학대를 저질렀습니다. 베아트리체는 아버지의 학대에 저항도, 신고도 해 봤지만, 아버지의 지위와 권력, 재산 앞에서 사람들은 입을 다물 수밖에 없었습니다.

결국, 베아트리체를 불쌍하게 여긴 의붓어머니 루크레치아와 이복 남동생 베르나르도, 친오빠 자코모, 집안의 고용인이자 그녀의 연인이었던 올림피오는 그녀와 함께 프란체스코를 살해할 결심을 하게 됩니다. 그들은 프란체스코를 둔기로 내려쳐 죽인 후 높은 곳에서 시체를 떨어뜨려 실족사로 위장했습니다.

그러나 이 사건을 수사하던 경찰들 눈에는 이상한 점이 한둘이 아니었고, 결국 끈질긴 수사로 베아트리체를 포함한 첸치 가문의 사람들과 범행에 가담한 모든 이들이 체포되었습니다. 프란체스코의 악행을 익히 알고 있던 많은 사람들은 그들의 정당방위를 주장하며 법원의 결정에 항의했지만, 첸치 가문의 막대한 재산을 탐낸 교황 클레멘스 8세는 결국 전원에게 사형을 선고했습니다.

영국의 낭만파 시인 퍼시 셸리(Percy Bysshe Shelley, 1792~1822)는 그녀의 이야기를 “인간 마음속의 가장 어둡고도 비밀스러운 이야기”라고 했습니다. 이 아름다운 여성의 비극적인 이야기는 많은 문장가, 예술가들의 마음을 울려 수많은 작품으로 승화되었습니다. 문학으로는 프랑스의 소설가 스탕달이 <첸치>라는 중편 소설을 썼고, <큰 바위 얼굴>과 <주홍 글씨>로 유명한 소설가 나다니엘 호손은 <대리석 목양신>에서 베아트리체 첸치의 이야기를 다루었습니다.

그 외에도 베아트리체의 이야기는 수많은 미술 작품, 오페라, 영화의 소재로 쓰이며 재탄생했습니다. 그중 베아트리체처럼 젊고 아름다웠으며 천재적인 재능을 지닌 화가 엘리자베타 시라니(Elisabetta Sirani, 1638년~1665년)의 손에서 태어난 베아트리체 첸치의 모습은 그 어떤 작품들보다 형언하기 힘든 아름다움을 보여줍니다.

화가는 옥중에서 판결을 기다리고 있는 베아트리체의 고독한 아름다움을 표현했습니다. 죄라곤 발견할 수 없는 맑은 눈빛과 살짝 지어 보이는 미소는 고된 심문으로 인해 이제는 모든 걸 체념하고 자신의 마지막 모습을 화가에게 아름답게 그려달라고 부탁하는 느낌입니다. 이는 베아트리체의 이야기를 알고 같은 여성으로서 그녀의 슬픔과 고통을 깊이 공감한 엘리자베타 시라니 외에는 표현할 수 없는 표정이라고 생각합니다. 화가는 그림, 특히 인물화를 그릴 때 모델이 되는 대상과의 감정 이입이 중요하기 때문입니다. 그녀가 얼마나 베아트리체의 상황에 몰입해서 그렸는지 느껴질 정도입니다.

1638년에 태어난 엘리자베타 시라니는 마치 베아트리체 첸치를 따라가듯, 27세의 나이에 병으로 요절했습니다. 두 명의 가인(佳人)은 모두가 부러워하는 아름다움을 가졌지만, 마치 누군가의 질투를 받은 것처럼 그 아름다운 인생의 꽃을 전부 피워 보지도 못한 채 세상을 떠난 것입니다. 비록 걸어온 길은 달랐지만, 엘리자베타 시라니는 베아트리체에게 무언가 깊은 동질감을 느껴서 그녀의 아름다움을 세상에 남긴 것이 아닐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