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첫발자국 _ 607개의 응원과 하나의 비난 _ 연지

연지, 배우·작가

이건 비밀이지만, 나는 매일 유튜브에 같은 것을 검색해 본다. 그리고 쭉 스크롤을 내려서 영상이 아닌 밑의 댓글을 본다. 댓글 수 607개로 멈춘 그 영상은 벌써 1년 전의 것으로, 제목은 <아무도 몰라봐도 꿋꿋하게 버틴 어느 무명 배우이자 신인 작가의 하루>이다. 혹시 눈치챘을 수도 있을 것이다. 맞다. 그것은 바로 내 영상이다.

에세이집 <배우의 목소리>를 출간하고 얼마 되지 않아 편집자님께서 깜짝 놀랄 소식을 전해주셨다. 바로 교보문고 측에서 ‘작가관찰일지’라는 촬영을 제안하셨다는 것이다. 이제 막 책 한 권을 펴낸 신인 작가인 내게 이런 기회라니, 너무 놀랍고 감사했다. 거기다 교보문고라면 우리나라 사람들 모두가 다 아는 대형 서점 아닌가. 유튜브 구독자도 8만 명이 넘고! 나는 이렇게 좋은 기회를 앞두고 프로페셔널한 배우이자 작가의 모습을 보여줘야지 다짐했다. 하지만 막상 촬영 날이 되니 많이 떨렸고, 덕분에 카메라를 들고 나를 따라다니는 피디님 앞에서 어리바리한 모습을 보이기도 했다.

3주 정도 지났을까. 유튜브에 알람이 떴다. 유튜버들이 “구독, 좋아요, 알람 설정 부탁드려요!” 할 때의 그 알람! 바로 내가 출연한 영상이었다. 아마 내가 그 영상의 첫 번째 시청자가 아니었을까 싶다. 섬네일 속 맹한 내 얼굴을 조심스레 눌러본다. 12분 20초짜리 영상에는 언제 보아도 왠지 부끄러운 영상 속의 나로 꽉꽉 차 있었다. 연기할 때와는 다른 그저 자연스러운, 그냥 내 모습들. 웃을 땐 저래서 아빠가 입 좀 가리라고 하셨구나. 프로필 투어(제작사에 종이 프로필을 제출하는 것)할 때 아직도 저렇게 어색하고 민망해하는구나. 연기할 때는 진짜 못 보겠다 싶었다. 혼자 있는 방이었음에도 불구하고 괜스레 등 뒤에 누가 있는 것처럼 눈치를 보았다. 그리고는 ‘좋아요’를 눌렀다.

그렇게 영상이 업로드가 되었지만, 기대가 컸던 것과는 달리 생각보다 반응은 미적지근했다. 그러다 교보문고 홈페이지에서 봄맞이 유튜브 채널 구독 이벤트를 했다. 채널 구독 혹은 영상에 응원 댓글을 달면 e교환권을 받을 수 있는 이벤트였다. 그런데 그게 시작이었다. 내가 나온 영상 밑 댓글이 607개까지 된 것은. 각 잡고 하나하나 정독했다. 악플은 눈을 씻고 찾아봐도 없었다. 모두 배우로서, 작가로서의 나를 응원하고 기억하겠다고 말하고 있었다. 몇 개의 댓글은 캡처까지 하며 감정을 고조시켰다. 이벤트 때문에 선플을 달아준 건데, 그게 그리 감동이냐고 할 수도 있다. 그런데 나에게는 그 이벤트가 꼭 ‘나를 위한 이벤트’처럼 느껴졌다. 새로운 시작을 할 수 있는 첫발자국으로 느껴진 것이다.

자의식 과잉이라고 하면 어떠랴. 그저 나에게는 그만큼 힘이 된 것이 사실이다. <배우의 목소리>에도 쓴 내용이지만, 나는 오디션이나 미팅 장소에 들어가기 전에 늘 이렇게 혼자 주문을 외우곤 했다.

“여기, 나를 좋아하는 사람들이 있어.”

그랬던 내가 요즘에는 내가 아닌 타인이 해준 응원의 댓글을 눈으로 보고, 입으로 작게 읊조리며 힘을 얻는다.

그렇게, 이 이야기가 마냥 해피엔딩이었으면 좋았으련만…. 어느 날, 눈에 들어온 댓글은 소녀처럼 춤추던 나에게 찬물을 확 끼얹었다.

“꼬우면 유명해져라.”

영상 속 나는 그 어느 부분에서도 현재 상황이 아니꼽다거나 유명하지 않아서 힘들다고 말한 적이 없었다. 기분이 언짢았다, 하루 종일. 그 하나의 댓글 때문에. 어느새 머릿속에서는 607개의 댓글이 사라지고 악플이라고 하기에도 뭐한 그 댓글 하나만 남게 되었다. 서글픈 마음으로 침대에 누워 천장만 멍하니 보던 나는 불현듯 한 심리 서적에서 봤던 말을 떠올렸다. “뜨거움을 겪고 나면 잠깐의 미지근함도 차갑게 느껴진다”는 그 말을. 그래, 나는 607개의 뜨거움을 맛보았고, 단 하나의 미지근함에 갑자기 감정의 중심을 잃어버린 것이었다. 어쩌면 나는 모두가 날 좋아해 줄 거라고, 나에게 관심 가져줄 거라고 자만했던 것은 아닐까.

그 후 1년 사이, 나는 여러 작품에 출연하면서 악플과 비판, 칭찬과 응원의 댓글을 고루 보고 들었다. 불행인지 다행인지, 요즘은 거의 미지근한 상태의 감정선을 유지할 수 있게 되었다. 대중의 관심과 사랑은 늘 고팠고, 지금도 간절히 바라는 소중한 것이다. 하지만 이를 건강하게 온전히 받아들이기 위해서는 먼저 스스로 중심을 잘 잡아야겠다고 생각한다. 이렇게 느끼게 된 것은 감사하게도 그 경험 덕분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