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는 1999년에 대학을 졸업했습니다. IMF 여파로 구조조정이 진행되던 시기라서 당시에는 신입사원을 채용하는 회사가 거의 없었습니다. 3개월간의 구직 활동 끝에 어렵게 대림코퍼레이션이라는 대림그룹(현 DL그룹) 무역상사에 입사하게 되었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영업 부서에서 3개월간의 수습을 하고 있을 때였습니다. 하루는 당시 회사의 CFO이었던 김장진 상무님께서 저를 호출하셨습니다. 자리에 찾아뵙자, 저보고 대학에서 경영학을 전공했느냐고 물으며 수습 마친 대로 회계팀에 와서 근무하라고 하셨습니다. 그렇게 저는 제가 대학에서 가장 싫어하던 회계를 직무로 맡아서 하게 되었습니다.

김장진 상무님께서는 매일 교회에서 새벽 기도를 마치고 회사에 가장 먼저 출근하셨습니다. 그리고 직원들이 출근하기 전까지 항상 책을 읽으셨습니다. 그분은 저에게 피터 드러커(Peter Ferdinand Drucker)가 쓴 책을 권하며 읽어보라고 하셨습니다. 앞으로는 지식 근로자의 시대니 직장인일수록 공부를 열심히 해야 한다고 하셨습니다. 그분이 권해주신 책들을 읽으며 저는 경영자로서의 꿈을 꾸기 시작했습니다.

월요일 아침 임원 회의를 마치고 나오시면 직원들을 불러 모으셨습니다. 당신은 책상 위에 걸터앉아 임원 회의에서 있었던 일을 모두 이야기해 주고 직원들이 각자 자기가 현재 진행 중인 업무에 대해 발표하게 했습니다. 신입사원이던 저에게는 그 시간이 너무나 소중했습니다. 회사의 중요한 이슈를 파악할 수 있었을 뿐만 아니라, 선배들이 하는 이야기를 통해 간접적으로 다른 업무에 대한 배경지식을 쌓을 수 있었기 때문입니다.

김장진 상무님은 직원들의 교육에 대한 투자도 아끼지 않는 분이셨습니다. 신입사원이던 저는 아침 7시부터 밤 11시까지 하루 평균 5시간 이상의 교육을 받아야 했습니다. 어학 교육부터 직무 교육까지 대학 때보다 더 열심히 공부해야 했습니다.

신입사원 시절, 저는 한 가지 업무를 오래하지 못하고 금방 싫증을 내곤 했습니다. 한 가지 업무가 손에 익으면 다른 업무를 하게 해달라고 졸랐습니다. 그렇게 저는 대림코퍼레이션에 근무하는 3년 반 동안 부서를 3번 옮겼습니다. 그래서 상무님은 저를 보고 간장 종지 같다고 하시며 나무랐습니다. 저는 그분의 잔소리가 듣기 싫어 도망 다니기도 했습니다.

그런데 하루는 우연히 그분의 책상 위에 펼쳐진 묵상록을 보게 되었습니다. 펼쳐진 묵상록 페이지 맨 마지막에 “이주호를 위해서 기도합니다”라고 적힌 문장이 눈에 들어왔습니다. 그 순간 가슴이 뭉클했습니다. 호된 꾸지람과 잔소리가 저를 위한 사랑의 표현이었음을 그때 깨달았습니다. 그 후로 저는 여러 번의 이직을 했고, 그때마다 그분의 잔소리를 들어야 했습니다. 

그분 곁을 떠나고 8년 후, 저는 다시 그분을 모시고 일을 하게 되었습니다. 상무님도 대림코퍼레이션을 나오셔서 후배가 창업한 회사에서 관리 담당 사장으로 일하고 계셨습니다. 한곳에 정착하지 못하고 방황하는 저를 불러서 같이 일하자고 하셨습니다. 그리고 그 회사에서 갑자기 해외 영업 업무를 맡게 되었습니다.

그곳은 광케이블용 보호관을 만들어 수출하는 회사였습니다. 주요 고객사가 각 나라의 통신사였습니다. 저는 문과 출신이라 통신 분야에 대해서도 문외한인 데다가 한 번도 해보지 않은 해외 영업을 하느라 극심한 스트레스를 받았습니다. 그럴 때마다 김장진 사장님은 저를 불러서 힘내라고, 너는 잘할 수 있다고 격려해 주셨습니다. 그분은 항상 저에게 “그래도 너는 결국 언젠가 잘될 거다”라고 말씀해 주셨습니다. 저는 그분이 해 주신 그 말씀 덕분에 힘든 시절을 견딜 수 있었습니다.

그분과 3년을 함께한 후 저는 현재의 고운세상코스메틱으로 이직했습니다. CFO로 회사에 합류한 뒤 우연한 기회에 사업부 전체를 총괄하는 역할을 하게 되었고, 지난해에는 대표이사로 취임했습니다. 저는 고운세상에 와서 지난 9년 동안 김장진 사장님에게 배운 대로 직원들을 교육하고, 그들에게 관심을 기울이며 투자했습니다. 그랬더니 매출이 100억 원도 안 되던 회사가 이제는 매출 2,000억 원에 달하는 중견기업으로 성장했습니다.

저는 김장진 사장님으로부터 ‘직원들이 회사의 성장을 위한 도구가 아니라, 회사가 직원들의 성장을 위한 수단이 되어야 한다’는 사실을 배웠습니다. 그리고 그 가르침을 잊지 않고 회사를 경영해 나가고 있습니다.

“너는 결국 언제가 잘될 거다.”

그분의 이 말씀이 제 마음에 황금 씨앗이 되어 힘든 상황에서도 저 자신을 포기하지 않고 여기까지 올 수 있게 해 주었습니다. 그래서 저도 힘든 시기를 겪고 있는 직원들을 보면 불러서 그렇게 이야기해 주고 있습니다. 

김장진 사장님과의 만남. 그분은 이 소중한 만남을 통해 저를 한 사람의 경영자로서 만들어 주셨습니다. 그리고 다른 사람을 배려하고 키우는 사람이 될 수 있도록 해 주셨습니다.

*1972년 출생. 원주고등학교를 거쳐 연세대학교 경영학과 졸업. 한국 GPTW 선정 ‘한국에서 가장 존경받는 CEO(2022). 現 (주)고운세상코스메틱 대표이사.

[출처] 월간에세이 Essa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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