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덧 작년이 되어 버린 2023년. 지난해는 내 인생에 있어서 상당히 오랫동안 기억에 남을 한 해였다. 나의 오랜 스승이셨던 故 김남윤 선생님과의 이별, 그리고 연세대학교 임용으로 맞이하게 된 새로운 학생들과의 만남이 모두 같은 시기에 일어남으로써 개인적으로 많은 변화를 겪게 된 것이다.

김남윤 선생님은 나의 바이올린 인생, 아니 어쩌면 내 인생을 통틀어 굉장히 큰 영향력을 선사하신 한 분이다. 선생님은 레슨을 하는 동안 단 몇 개의 단어만으로 노래하시거나 소리치셨지만, 그것만으로 단 한 번도 보지 못했던 나의 내면에 내재한 새로운 어떤 것들을 꺼내어 마주할 수 있게 해 주신 분이셨다. 그 몇 개의 단어들은 사실 누구나 할 수 있을 법한 표현들이었지만, 선생님의 목소리를 통해 나오게 되면 그 자체로서 갖고 있는 어떠한 절대적이고 신묘한 힘이 있었다.

돌이켜 보면, 나에게 있어서 학생들을 가르치던 첫 순간부터 새로움의 연속이었다. 그중 대부분은 스스로에 대한 새로운 발견이었다. 예를 들면 선생님의 가르침이 나에게 얼마나 깊고 세밀하게 침투해 있는지, 결코 의도하지는 않았지만 문득 선생님과 꽤나 비슷한 모습을 하고 있는 나를 볼 때면 묘한 기분이 들기도 한다.

사실 열댓 명의 학생들을 가르친다는 것은 그저 강의실에서 레슨만 한다고 끝나는 단순한 일은 아니기 때문에 생각보다 시간적, 체력적 소진이 크다. 무엇보다 한 명 한 명 각기 다른 상태, 진도, 일정, 실력 등을 매 수업마다 개별적으로 고려해서 계획하고 진행해야 한다. 그리고 때마다 학생들에게 필요한 것이 무엇인지 고민하고 판단하는 것 외에도 매 순간 신중을 기해야만 하는 일이다.

가끔 학생들을 가르치는 일과 함께 이런저런 연주 준비까지 일정이 겹칠 때는 분명 체력적으로도, 정신적으로도 너무 지치게 되는 때가 오기 마련이다. 그럴 때면 주변의 어떤 이들은 내가 현재 필요 이상의 에너지를 학생들에게 쏟고 있다며 조금 ‘덜’ 열정적으로 해도 괜찮다고 조언해 주기도 한다.

글을 써 내려가다 보니, 문득 김남윤 선생님께서 하시던 말씀이 떠오른다.

“몸과 마음을 다하여 될 때까지.”

내가 학생의 신분이었을 때는 선생님의 이 말씀을 그저 ‘열심히 하라’는 상투적인 표현 정도로만 이해하고 있었던 것 같다. 하지만 최근에는 조금은 다른 의미로 받아들여지게 된다. 스승이든 연주자이든 누군가에게 혹은 무언가에 몸과 마음을 다한다는 것이 얼마나 고되고 어려운 일인지, 그 무게와 책임감을 한층 더 느끼게 된 것이다.

내가 연주자로서 무대에 오를 때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는 것이 있다. 바로 ‘내가 얼마나 이 무대를 위해 열과 성을 다하고 몸과 마음을 다 바쳐 진심으로 준비했는지’이다. 나의 진심이 연주를 통해 관객에게 온전히 전달되었으면 하는 단 하나의 바람처럼 몸과 마음을 다해 진심으로 학생들을 대할 때 어린 시절의 내가 스승을 통해 느꼈던 그 절대적이고 신묘한 힘을 학생들도 느낄 수 있기를 하는 바람이 있다.

가만히 지난날을 들여다보면, 김남윤 선생님의 레슨에는 내용을 초월하는 무언가가 있었다. 이는 몸과 마음을 다하는 뜨거운 열정과 사랑이다. 바로 그 진실한 마음이 있었기에 단 몇 마디의 말씀조차도 나에게 있어서 큰 가르침으로 다가올 수 있었음을 학생을 가르치고 나서야 더욱 강렬하게 느끼게 되었다. 반드시 어떤 사람을 실제로 만나야만 그 사람을 알 수 있는 것은 아니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나는 그동안 배웠던 삶에 대한 순수한 열정, 그 아름다움을 나 스스로 오래도록 간직하고 실천하기 위해 오늘도 부단히 노력하고 있다. 나의 학생들은 만나보지 못했을 스승님의 가르침이 시공간을 초월해 부디 그들에게 닿을 수 있기를 바란다.

*1995년 서울 출생. 한국예술종합학교 바이올린 학사, 獨 크론베르크 아카데미 석사, 쾰른국립음악대학 대학원 박사. 한국인 최초로 퀸 엘리자베스 콩쿠르 기악부분 우승(2015). 포브스 아시아 선정 ‘30세 이하 리더 30인’(2021). 現 연세대 음악대학 관현악과 

[출처] 월간에세이 Essay
ⓒ 본 콘텐츠는 발행사에서 제공하였으며, 저작권법의 보호를 받으며 무단 전재, 재배포 등을 금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