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계절이 있는 한국과 일본에서는 계절의 변화가 무척 중요했기 때문에 그에 관한 표현도 무척 다양하다. 그중에서도 1년을 봄, 여름, 가을, 겨울로 나누고 그것을 다시 여섯 개로 나눈 24절기(二十四節気. にじゅうしせっき)는 오늘날에도 계절의 변화를 나타낼 때 많이 사용하는데 음력과 달리 태양이 움직이는 경로인 황도를 24등분한 것이라 날짜가 일정한 편이다. 또한 원래 중국에서 만들어진 것인 만큼 한일 양국에서 비슷한 풍습도 있고 독자적인 풍습도 있어 재미있는데 이달에는 가을과 겨울에 해당하는 절기에 관해 알아보자.

입추

立秋（りっしゅう)

‘한여름이 지나 가을의 징조가 나타나기 시작하는 시기’로 연중행사가 아니기 때문에 특별히 먹는 음식이나 행사는 없다.

달력상으로는 가을이 시작되었지만 사실 8월 8~22일 무렵은 가장 더운 때인데 옛날 중국에서 만들어진 만큼 요즘 기후와는 다소 차이가 있는 듯하다. 참고로 입추 이후의 더위는 ‘남아 있는 더위’라는 의미의 ‘잔쇼(残暑)’라고 표현한다.

처서

処暑（しょしょ)

‘곳 처(処)’에는 ‘안정되다’라는 뜻이 있어 말 그대로 ‘더위(暑)가 안정되는 시기’를 말한다. 낮에는 더워도 아침저녁으로 선선한 바람이 불어오기 때문에 우리나라에서는 ‘처서 매직(처서와 Magic(마법)을 합친 말)’이라고 말하기도 하는데 처서 무렵이 되면 마법처럼 선선한 바람이 불기 시작한다는 의미의 신조어이다. 처서에는 특별한 풍습이 없지만 이 시기에는 등푸른 생선에 기름이 오르며 맛있어지기 때문에 슈퍼마켓에 가면 제철을 맞은 정어리(いわし)와 꽁치(さんま)를 많이 볼 수 있다.

백로

白露（はくろ)

백로는 ‘초목에 이슬(露)이 맺혀 하얗게(白) 빛나는 것처럼 보이는 시기’를 뜻한다. 이때도 낮에는 더운 날이 이어지지만 서서히 가을로 접어들며 밤 기온이 떨어지기 시작해 아침에는 풀과 나무에 이슬이 맺히는데 이러한 현상에서 유래한 이름이다. 예쁜 이름 때문인지 일본의 전통 시인 하이쿠(俳句)에서 가을을 나타내는 계절어로 많이 등장한다.

백로에 포함된 공휴일에는 9월 셋째 월요일인 ‘경로의 날(敬老の日)’이 있는데 조부모님께 선물을 드리거나 장수를 기원하는 다양한 이벤트가 열린다.

추분

秋分（しゅうぶん)

가을의 중간으로 이때를 기점으로 밤이 길어지고 낮이 짧아진다. 추분날(秋分の日)은 춘분날(春分の日)과 마찬가지로 공휴일이며 추분날을 중심으로 앞뒤로 3일씩, 총 7일간을 가리키는 오히간(お彼岸)에는 조상의 묘를 찾아 성묘하는 풍습이 있다. 즉, 오히간은 봄과 가을, 두 번 있는데 ‘더위, 추위는 오히간까지(暑さ寒さはお彼岸まで)’라는 말이 있듯이 추분 이후에는 더위가 누그러져 쾌적한 날씨가 이어진다. 참고로 가을의 오히간에도 팥떡을 먹는데 춘분 때는 ‘보타모치(ぼたもち)’지만 추분때는 ‘오하기(おはぎ)’라고 부른다.

한로

寒露（かんろ)

이름에 ‘찰 한(寒)’이 있어 겨울에 속한 절기같지만 겨울이 오기 전, 아침저녁으로 찬 기운이 느껴지는 시기를 말한다. 일본에는 여름의 긴 장마 이후 태풍과 함께 비가 계속되는 가을 장마가 있는데 한로 무렵이면 가을 장마가 끝나고 맑은 날씨가 이어져 가을이 더욱 깊어진다.

상강

霜降（そうこう)

가을의 마지막 절기로 이름 그대로 ‘서리(霜)가 내리는(降) 시기’이며 낮과 밤의 온도 차로 생긴 이슬이 찬 기운에 얼어 서리가 될 만큼 쌀쌀해진다.

들판의 풀은 노랗게 마르고 산에는 색색의 단풍이 물들기 시작하는데 아침저녁에는 쌀쌀하지만 낮에는 따뜻해 나들이하기에 좋은 시기이다.

입동

立冬（りっとう)

달력상 겨울이 시작되는 시기이다. 홋카이도(北海道)나 도호쿠(東北) 등의 북쪽 지방에서는 나뭇잎이 떨어지며 겨울 분위기가 나지만 대부분의 지역에서는 단풍이 절정을 이루고 규슈(九州) 등 남쪽 지방에서는 아직 단풍이 시작되지 않은 곳도 있어 겨울이라는 감각은 별로 없다.

소설

小雪（しょうせつ)

‘약간(小)의 눈(雪)이 내리는 시기’로 북쪽 지방부터 눈이 내리기 시작하지만 양은 많지 않다는 의미이다. 절기상 겨울이기는 해도 맑은 날에는 그렇게 춥지 않아서 이 무렵의 ‘마치 봄처럼 날씨가 포근한 날’을 가리켜 ‘고하루비요리(小春日和)’라고 표현한다.

이 시기의 공휴일로는 11월 23일의 ‘근로 감사의 날(勤労感謝の日)’이 있는데 ‘노동을 존중하고 생산을 축하하며 국민이 서로 감사하는 날’이라는 취지의 국경일로 원래는 궁중에서 왕실의 조상신에게 햅쌀을 바치며 한 해의 수확을 감사하고 다음 해의 풍작을 기원하는 제례 의식을 열었던 날이라고 한다.

대설

大雪（たいせつ)

눈이 쌓일 정도로 많이 내리며 알록달록한 단풍도 떨어져 본격적인 겨울 분위기가 느껴지는 시기이다. 기온이 떨어지며 연못과 강이 얼기 시작하고 동물들은 이 무렵 겨울잠에 들어간다. 시베리아에서 내려온 찬 기운은 동해를 바라보고 있는 지역에 많은 눈을 뿌리며 반대로 태평양 쪽 지역에서는 건조하고 추운 날씨가 이어진다.

동지

冬至（とうじ)

겨울의 가운데로 1년 중 낮이 가장 짧고 밤이 가장 긴 시기이다. 때문에 세계 각국에서는 이날 태양의 힘이 가장 약하며 이날을 기점으로 낮이 길어지기 때문에 다시 새롭게 태어난다고 믿었다.

한편 일본에서는 동짓날, 이름에 ん이 들어 있는 음식을 먹는 풍습이 있는데 발음이 운(運. うん)과 같기 때문으로 예를 들면 호박(옛 이름이 なんきん), 연근(レンコン), 은행(ぎんなん), 금귤(きんかん) 등이 있다. 그 밖에 유자를 띄운 따뜻한 물에 목욕을 하면서 나쁜 기운을 없애고 좋은 기운이 찾아오기를 기원하는 풍습도 있다.

소한

小寒（しょうかん)

이름은 ‘작은(小) 추위(寒)’지만 실제로는 추위가 절정을 향해가는 시기로 1월 7일에는 미나리(セリ), 냉이(ナズナ), 떡쑥(ゴギョウ), 별꽃(ハコベラ), 광대나물(ホトケノザ), 순무(スズナ), 무(スズシロ)의 일곱 가지 봄나물을 넣은 죽인 ‘나나쿠사가유(七草粥)’를 먹으며 한 해 동안 건강하게 지내기를 기원하는 풍습이 있다.

주요 행사로는 1월 둘째 주 월요일, 그해에 성인이 되는 사람들을 축하하는 성인식(成人式)이 있다. 2022년에는 일본의 성인 기준이 20세에서 18세로 낮아지며 혼란이 빚어졌는데 18세는 고등학교 3학년이라 이 시기에 대입 수험이 있고 음주도 18세가 아닌 20세부터 가능해 성인식 참가 연령은 여전히 20세로 유지하는 경우가 많다고 한다.

대한

大寒（だいかん)

겨울의 마지막 절기로 일 년 중 가장 추운 때를 의미하며 잡균이 활동하기 어렵기 때문에 된장, 간장, 일본 술 등을 많이 담그는 시기이다.

이 무렵 날씨는 ‘삼한사온(三寒四温)’이라고 하여 추운 날이 3일, 따뜻한 날이 4일 이어지기를 반복한다고 했는데 사실 2010년대 이후 이러한 특성은 거의 사라졌으며 내내 따뜻하거나 10일 이상 지속되는 한파도 나타나 기후 변화를 실감하게 한다.